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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방법을 모른다고? 일단 발을 내디뎌. 스텝을 밟아. 그리고 그냥, 음악에 몸을 맡겨. 그 흐름을 느껴 봐. 잘 모르겠어? 그럼 내 손을 잡아. 그거 거짓말이었는데. 춤 출 줄 모른다는 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 네가 가르쳐줄 걸 알았거든. 네 성격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생각했냐면, 난 네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네가 좋은 선생은 아니었지. 저 말만 해도 무슨 뜻인지 전혀 알 수가 없잖아. 어느 학생이 들어도 당황할 걸. 왜, 거짓말 한 번에 진심 한 번이야. 어차피 따질 생각도 없잖아. 넌 그냥 웃겠지.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하든 그랬잖아.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난 상상할 수 있어. 상상해봤어. 눈으로 직접 보면 어떨지. 가끔씩 그래봤어. 너랑 함께였을 때도. 네가 웃는 방식을 알아. 네가 웃으면서 숨을 내쉴 때마다 내 숨이 멈췄다는 걸 넌 알았어? 난 네가 이끄는 대로 이끌렸고, 난 그걸 즐겼어. 네가 날 시험하는 걸 즐겼듯이. 다시 춤 얘기로 돌아가서. 난 우리가 유리를 깨고 들어간 링 위에서 춤을 췄다고 생각해. 서로의 비밀을 하나씩 벗겨가면서. 나중에는 옷도 같이 벗겼지만 그건 일단 미뤄두자. 네 몸짓은 정말 우아했고,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고... 완벽하진 않았어, 넌 흥분하면 흐트러지니까. 아름답게. 그게 널 완성했지. 넌 춤을 그렇게 췄어. 나는 어땠냐면... 앞서 말했듯 난 너에게 이끌렸어. 링 위에서도. 네 공격을 피하고 가드를 올리면서. 꽤 바보 같았겠지. 이끌리기만 했다기엔 너무 적극적이지 않았냐고? 설마. 난 리드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이 그냥 즐겼어. 여기엔 어떠한 거짓도 없습니다, 재판관님. 그리고 너도 충분히 즐겼다고 생각할게. 아무튼 내가 기억하는 우리의 첫 번째 춤은 그랬어. 내가 너한테 춤을 출 줄 모른다고 했을 때, 그때 어쩌다가 그런 말을 하게 됐더라. 기억나진 않지만, 꽤 좋은 분위기였던 건 알아. 편안했지. 네가 그렇게 만들어줬어. 지금 생각해보면, 내 생의 최고의 일탈인데 당연히 편했겠지 싶어.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마, 그래서 좋았다고. 결국은. 어쨌든, 내가 그렇게 말했을 때, 넌 아무 생각 없는 것처럼 굴었지만 지금은 나도 알아. 머릿속에서는 천천히 가늠해봤겠지. 이건 작업 거는 건가? 아니면 나를 의심하나? 너에게 다가간 게 임무 때문이라는 걸 알아차렸나? 다 틀렸고 그냥, 그냥 하는 말인가? 그때 머리 굴리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았거든. 아니면 말고. 하지만 왠지 그랬을 거라고 생각해. 일단 정답은 작업 거는 거였어. 지금쯤이면 눈치챘겠지. 뻔히 보이게 순진한 척하는 남자도 좋잖아? 적어도 넌 좋아했어. 그런 남자를 좋아한 건지 그런 날 좋아한 건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난 네가 발레를 알려줄 거라고 생각했어. 우습잖아. 발레리노들을 욕보이려는 건 아니야. 그냥, 내가 발레라니. 내가. 포기는 웃었을걸. 너도 그럴 거라고 예상했었는데. 넌 대신 말했지, 일단 발을 내디뎌. 그럼 난 발을 내딛고. 스텝을 밟아, 갑자기 그렇게 말하면 어떻게 하라는 거야? 그래도 난 스텝을 밟았어. 어색한 척 웃으면서. 음악에 몸을 맡겨. 그 흐름을 느껴 봐, 난 그렇게 할 수 있었어. 네가 틀어준 음악은 좋았지, 내 취향이었어. 하지만 난 머뭇거렸지. 네 다음 말을 알았으니까. 내 손을 잡아, 난 네 손을 잡았어. 그리고는 춤을 췄어. 부드럽게. 진지하게. 장르가 불분명한 춤을. 스틱이 거기 있었으면 분명 비웃었을 거야. 하지만, 분명히 훌륭했어. 넌 단번에 내가 초보가 아니라는 걸 알았고, 조금 더 대담하게 움직이기 시작했지. 처음부터 강렬했으면서도. 그리고 난, 이제 내가 뭐라고 말할지 알겠지? 그렇지만 파트너를 존중해서 나름 열심히 춤을 췄다고. 네가 나한테 리드할 기회도 줬고 말이야. 춤은 전희 같기도, 그 행위 자체 같기도, 그리고 후희 같기도 해. 어떻게 추느냐에 달렸지. 우리는 그 모든 춤을 췄어. 함께. 마음에 들 때도 있었고 조금 부족할 때도 있었어. 너한테도 그랬겠지. 난 그게 자연스럽다고 생각해. 모든 연인들이 그렇지. 우리도 그들과 다를 바 없었어. 꽤, 아니, 무지 별난 커플이긴 했지만. 그래서 좋았어. 난 너와의 추억을 얘기하고 싶은데 자꾸 내 생각을 말하게 되네. 그냥 참고 들어줘. 이번엔 실망했다고 말없이 떠나지 말고. 이야기엔 감상도 중요하잖아. 서로가 주도권을 잡으면서 이어갔던 춤은 네가 떠난 날 끝났지만, 우린 다시 만났잖아? 난 부정했지만 우리의 춤이 다시 시작되었지. 오히려 예전보다 더 괜찮은 춤을 춘 것 같은데. 내 삶을 서서히 망가뜨렸잖아. 우리의 춤이 그렇지, 뭐. 네가 그랬고, 나 스스로도 그랬지. 그때로 다시 돌아가고 싶냐면, 글쎄. 워낙 힘든 시기였긴 해서. 그 후에도 그랬고. 너와의 두 번째 재회는... 우리의 마지막 이별 때에도 난 우리가 춤을 췄다고 생각해. 너도 그렇게 생각했지? 파트너를 향해 천천히 다가가서, 서로만을 느끼면서, 천천히. 부드럽게. 진지하게. 장르는 상관없어. 우리의 춤이잖아. 내 생각에는, 내 생각에는 말이야. 엘렉트라, 우리의 춤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인사를 하지 않았잖아. 춤이 끝나면 파트너끼리 예를 차려서 인사를 해야지. 그래서 난 기다리고 있어. 이렇게 멍청한 혼잣말을 하면서 널 기다리고 있어. 네가 다시 내 앞에 나타나서 우리의 춤을 끝맺어주기를. 그리고 우리가 다시 춤출 날을 기다리고 있어. 그때까지 난 멈추어 서 있지도 않을 거고, 과거에 얽매여있지도 않을 거고, 멍청이처럼 굴지도 않을 거야. 앞으로 계속 나아갈 거야. 내 사람들과. 네 파트너는 그렇게 계속 살아갈 거야. 그러니까 엘렉트라, 언젠가 그런 날 자랑스럽게 여기고 다시 찾아와줘. 함께 춤을 추자. 발을 내디뎌.

Matt Murdock & Elektra Natchios's Freestyle Dance
by 파이

스티븐은 저가 모르는 과거의 마크가 궁금했다. 안 좋은 기억들 말고, 좋은 기억들 말이다. 가령 연애라던가. 결혼이라던가. 첫사랑도 좋은 것에 해당하나? 일단 스티븐에게는 아니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래서 스티븐은 마크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았다. 마크는 대답해주기도 했고, 무시하기도 했으며, 반대로 질문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보낸 시간은 그들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았다. 가끔씩 또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래서 스티븐은 라일라를 불렀다. 그들의 이야기의 주된 인물이니까. 마크는 뒤늦게 그 생각이 아주 멍청한 것이라고 말했다. 너무 늦어서 라일라는 그를 비웃었다. "그때 탄 배에서 들은 소리 흉내 낼 수 있겠어요?" "엄, 시도해본 적 없는데." 그들은 스티븐의 집에서 간단한 음식을 시켰고 라일라가 가져온 와인과 함께 먹었다. 스티븐은 마크가 먹으려던 스테이크 조각을 내려놓고 샐러드 통을 집어 들며 라일라에게 물었다. 대답은 그렇게 했어도 라일라는 어깨를 한번 으쓱이고는 두 손을 모아 입으로 가져갔다. 스티븐은 라일라의 그런 점이 참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몇 번의 시도 끝에 겨우 그 소리와 비슷한 소음이 났다. 그들은 마지막에 난 바람 빠지는 소리가 웃겨서 낄낄거렸다. "웃지만 말고 너도 해봐. 얼마나 잘하는지 보자. 스티븐? 아니다, 마크가 해." "내가?" 얌전히 있던 마크에게 불똥이 튀었다. 스티븐도 마크를 부추겼다. "난 거기 없었잖아. 그러니까 네가 해야지."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혼잣말로 티격태격하던 몸의 어깨에 힘이 축 빠지더니 결국 손을 입에 가져갔다. 그 모든 행동들을 라일라가 흥미롭게 구경했다. 마크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뭐야, 왜 이렇게 잘해!" "네가 시켜놓고선!" 정말 그때 그 소리였다. 라일라는 놀람과 기쁨, 그리움과 배신감 등이 섞인 마음으로 플라스틱 포크를 마크에게 던졌다. 그걸 웃으면서 피한 건 마크인지 스티븐인지 셋 다 알지 못했다. 그만큼 그들은 분위기에, 그리고 술에 취해있었다. 즐거운 시간이었다. 라일라는 잠시 나른해져 눈을 감았다가 어떤 기억을 떠올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의 얼굴엔 마크와 스티븐이 사랑하는 미소가 떠올랐다. "그건 기억 안 나?" "뭐?" 라일라는 대답 대신 팔을 벌렸다. 그리고 장난스럽게 몸을 들썩였다. 마크와 스티븐은 저게 뭔지 아주 잠깐 고민했다. 저건 춤이구나. "그래, 춤도 췄댔지!" 스티븐이 외쳤다. 마크는, "아, 아니. 아니. 아니야. 난 이 난장판에서 춤 안 춰. 안 출 거야. 야, 일어나지 마. 아니. 안 춘다니까." 어쩔 수 없이 일어섰다. 스티븐은 그가 못 이기는 척하면서도 즐긴다고 생각했다. 라일라도 따라서 일어났다. 스티븐이 그의 손을 잡아 일어나는 것을 도왔다. 라일라가 눈썹을 까딱이며 말한다. "파트너한테 예의 바른데." "그래요? 사실 춤 안 춰봐서 잘 몰라요." "안 춰 봤어? 그럼 왜 일어난 거야?" "춤춰보고 싶어서요. 당신이랑." 마크와 라일라는 속으로 '스티븐이 무의식적으로 내뱉은 플러팅' 리스트에 한 마디를 더 추가했다. "그럼 어떻게 할까?" 라일라가 남편의 몸에 한 발짝 다가가 은근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연스럽게 어깨를 잡고 나머지 손으로 그의 손을 맞잡았다. 허리에 손을 얹어. 마크가 멍하게 서 있는 스티븐에게 속삭였다. 그래서 스티븐은 어색하게 라일라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손가락이 라일라의 몸에 닿았을 때 화들짝 놀라는 것도 잊지 않았다. 부부가 그 꼴을 보고 웃었다. 머쓱해진 스티븐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런데 음악은 필요 없어?" "아." 음악. 음악이 굳이 필요할까? 여기에 네가 있고 내가 있는데. 우리가 다시 손을 맞잡고 섰는데 이대로도 충분하지 않아? 라일라는 생각을 속으로 삼켰다. 대신, 콧노래를 흥얼거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발을 내디뎠다. 엉거주춤 따라오는 것을 보니 스티븐이구나. 라일라는 마크가 지금 무얼 할지 궁금했다. 그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할까? "집중해야지." 미국 억양의 목소리가 라일라를 깨웠다. 마크가 부드럽게 리드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결혼식에서 들었던 멜로디였다. 허리를 젖히는 라일라를 잡아주며 마크는 몸의 주도권을 다시 스티븐에게 넘겼다. "오, 날 그대로 놓칠 줄 알았는데." "당신이 평소에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날 잡고 한번 물어봐야겠어요." 마음대로 해. 라일라는 웃음 섞인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스티븐의 어깨에 기댔다. 움찔거리는 게 느껴졌지만, 그는 이내 굳었던 몸에 힘을 풀고 계속 춤을 추었다. 라일라는 지금 자신과 춤을 추는 게 마크인지 여전히 스티븐인지 궁금했다. 하지만 묻지 않았다. 아무래도 좋았으니까. 누구든 상관없다는 게 아니라, 라일라는 마크와 스티븐 둘 다 좋았다. 둘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느긋하게 춤추었다. 그리고 잔잔한 물결을 손가락으로 찌르는 건 언제나 스티븐이었다. "나 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그, 도는 거요. 스핀?" "아하." 라일라가 몸을 세웠다. 그게 해보고 싶어? 네. 웃음기 서린 눈이 스티븐의 얼굴을 비추었다. "이렇게 하면 돼." 라일라는 스티븐이 팔을 들도록 이끌었고, 스티븐의 손 대신 손가락을 잡고 천천히 돌았다. 혹시나 스티븐이 잡은 손을 놓지 않아 손목을 꺾을까 봐. 마크와 라일라는 그것을 그저 소소한 비밀로 남기기로 했다. 한 바퀴를 돈 라일라는 다시 스티븐의 품에 자리 잡았다. "와, 진짜 멋졌어요." "고마워." 허리를 젖혀주며 마크도 말을 얹었다. "실력이 더 늘었네." "별 말씀을." 그들은 그 후로도 춤을 멈추지 않았다. 스티븐이 노래를 하기도 했다. 그들의 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밴드 노래. 그들은 웃으면서 몸을 더 흔들었다. 라일라가 화끈한 락을 부르기도 했다. 마크가 그렇게 큰 소리로 웃는 것은 라일라도 처음 보았다. 이집트에 술의 신도 있던가? 아무튼, 그에게 감사하길. 이 모든 건 술이 있어서 가능했던 일이니까. 그리고 스티븐도, 마크가 덧붙였다. 장르를 전전하며 춤을 추면서도 그들은 손을 놓지 않았다. 넘어질 뻔해도. 스텝이 꼬여도. 발을 밟아도. 그때 그 시절과는 전혀 달랐지만 그 시절처럼 행복했다. 마크의 좋은 기억이 또 하나 생겼다. 스티븐은 그것에 만족했다. 창문 밖에는 달이 떠 있었다. 언제나처럼.

Marc Spector & Layla El-Faouly & Steven Grant's Slow-dance
by 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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